영화 / / 2023. 5. 19. 11:42

'늑대와 함께 춤을' 백인 바람의 메시지, 동물의 우정과 창씨개명

 

 

 

 

 

 

 

'늑대와 함께 춤을'은 백인인 주인공이 바람의 메시지를 배우며 대자연과 동물에 대한 친화 속에서 그의 삶도 변한다. 케빈 코스트너가 제작, 주연을 맡았다. 남북전쟁에서 고립된 존 던바 중위는 인디언과 친구가 되고, 그들은 그를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고 부르게 된다.

 

두남자
두남자

백인

남북전쟁에서 다리를 부상당한 북군의 중위 존 던바는 서부 국경지대의 세즈윅 요새를 홀로 지키다가 수우족과 마주치고, 그들의 삶에 동화된다. 존 던바는 그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의 말과 문화를 배우며 여인 '주먹 쥐고 일어서'와 사랑에 빠진다. 제목은 주인공의 서술형 이름이자, 그가 그들과 하나가 되는 길을 뜻한다. 그는 다른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되고 그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실천하면서 자연과 동물에 대한 친화를 배운다. 오만한 백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와 문명만이 최상이고, 최고의 선이라 여기며 다른 종족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존 던바는 함께 살아가면서 그들의 정신과 지혜, 자연과 조화된 삶을 접하고 내면의 충격을 받는다. 감독은 현대인들에게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다시 돌아보게 하고,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를 가진 사람들과 과연 어떻게 소통하고, 협력할 길이 있는가를 모색하게 한다. 그는 자신이 속한 백인 세계가 얼마나 비인도적이며 잔인한지 깨닫고, 기병대와 싸우기까지 한다. 이 세상의 진정한 야만인은 과연 누구인지? 진정한 문명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저들의 세계관과 백인의 세계관 사이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가치를 찾으려 고민하고, 그 과정의 고통과 감동적인 결말을 두루 보여준다. 그는 마침내 사랑하는 여인 '주먹 쥐고 일어서'와 결혼하지만 자신 때문에 부족이 위험해질 것을 직감하고 조용히 부족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언제나 그를 따르던 '하얀 발'이라는 늑대와 작별하고, 아내와 함께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바람의 메시지

여기 등장한 부족은 당시 아메리카 서부에서 가장 강력한 숫자의 부족인 수우족이다. 특히 수우족 중의 라코타 지파는 버펄로를 숭상하고 신성시하면서 버펄로에게 감사의 의식을 치르며 양식과 가죽을 공급받는다. 특이한 점은 수우족 전사들은 전쟁에서 적의 살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오직 상대편의 무기와 말을 획득함으로써 자신들의 용맹을 과시하길 좋아하는 평화의 부족이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수우족 전사들이 전혀 살상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우족은 자신들의 영토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적을 죽일 수도 있었다. 가령 '늑대와 춤을'에서 수우족 전사들은 포니족과의 전쟁에 나가서 많은 적을 죽였다. 또한 수우족은 자신들의 전사들이 죽었을 때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을 거쳤는데 이것은 수우족이 살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수우족 전사들은 살상을 안 하나요?라는 질문에는 단순한 대답이 없다. 수우족은 자신들 문화와 철학, 각 상황에 따라 전쟁과 살상에 대해 각기 적절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행동 역시 상황과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는 걸 뜻한다. 만물 영혼설을 믿는 수우족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주인공의 친구 '머릿속의 바람'이라는 현자를 통해 우리에게 전한다. 그리고 그들의 메시지는 귓가를 스치는 작은 대사 속에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우주적 철학을 바람소리처럼 전해준다. "나는 너의 적이 아니다. 나는 너와 같은 사람이다." "너는 늑대와 함께 춤을 추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너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나는 네가 두려워하는 것을 안다. 너는 자신과 진실을 두려워한다." 특히 주인공의 친구 '머릿속의 바람'이 반문 형식으로 그에게 조용히 묻는 대사 "당신은 항상 내 친구인가?"라는 질문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하는 우리의 양심과 나약한 의리에 경종을 울린다.

 

동물의 우정

인간과 개의 관계는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늑대와 인간의 교감에서 출발한다.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케빈코스트너가 부족과 헤어지고, 사랑하는 늑대 '하얀 발'과 이별하는 모습은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다. 왜냐하면 인간은 위험에 처했을 때 도망가도 늑대는 남아서 죽어갔기 때문이다. 기병대가 늑대를 그토록 공격해도 늑대 '하얀 발'은 주인의 떠나는 모습을 지켜주며 결코 도망치려 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 장면은 늑대의 조건 없는 충성과 희생이 인간의 배신, 인간사의 값싼 타협과 얼마나 대조되는가를 보여준다. 또한 엔딩 장면은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겪은 고통과 갈등을 모아서 표현한 것 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 영화를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긴다.

 

창씨개명

1. 이름에 담긴 민족의 정체성

이름은 그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또한 이름은 그들의 역사와 전통과 존엄을 상징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따라 말로 풀어주는 서술형 이름을 지었으며, 각 부족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들의 이름은 신앙과 삶과 자연을 연결해 준 것으로 유러피안은 저들의 이름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것을 경멸했고 심지어 바꾸려고 시도했다. 유럽인들은 그들의 이름을 함부로 줄여서 부르거나, 기독교식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렇게 전통적 이름은 유럽인들에 의해 변형되거나 사라졌다. 따라서 인디언의 학살과 이름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학살은 그들 문화와 존재를 뿌리째 부정하면서 파괴한 것이며, 그 가운데 저들이 지킨 이름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나름대로 보존한 것이었다. 그들이 그 이름을 잃었을 때 그들의 정체성과 문화도 함께 사라졌다.

 

2. 인디언식 작명

1970년 5월 15일에 태어난 사람의 인디언식 이름은 '바람의 눈물'이다. 이런 이름은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감정과 태어난 계절에 따라 지은 이름이다. 1985년 10월 31일에 태어난 사람의 인디언식 이름은 '검은 달의 마법사'다. 이 이름은 인디언들이 자신의 재능과 태어난 시기를 따라서 지었다. 1964년 2월 3일에 태어난 사람의 인디언식 이름은 '빠른 새의 노래'이다. 2001년 3월 21일에 태어난 사람의 인디언식 이름은 '새벽의 꽃'이다. 이런 이름은 인디언들이 아름다움과 태어난 시간에 따라 지어졌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이름 짓기는 인디언들이 양력이 아닌 음력을 썼기 때문에 실제로 인디언들이 이렇게 이름을 지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유럽인들의 인디언식 이름은 다음에 서술할 조선인 말살정책과 동일하다.

 

3. 조선사람 일본이름

인디언의 이름 말살과 일본의 조선인 창씨개명은 일맥상통한다. 창씨개명은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한 조선인의 성씨와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꾼 정책이다. 일본은 조선인(한국인)에게 일본인과 같은 성씨와 이름을 쓰게 함으로써 자신의 국적과 문화를 부정하고 일본화시키려고 했다.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자신들의 성씨와 이름을 버리고, 일본식 이름을 쓰는 것을 '명예'라고 유혹하면서 강제하였다. 이렇게 각민족에게 있어 그들 고유의 이름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잃어버리게 만들기도 하고, 다시 되찾고 보호해 주는 도구이고 창구라는 점에서 양면성을 지닌 문화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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